이런 여자 캐릭터 이제 그만.
긴 머리 높이 묶고 요술봉 휘두르며 빨주노초파남보
결심은 쉬웠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았다.
제작이 무산됐다.
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한복판 밝은 거리에 남자끼리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자유의 만끽 수준이 아니었다. 지나가는 버스에서, 주변 건물에서, 길거리에서 우리의 행진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, 우리도 더 반갑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.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거리로 나서자 우리를 인정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났다. 시청부터 명동까지 거대한 무지개 띠를 만들며 걷는 건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. 이 한 시간을 위해 짧게는 몇 달 동안 혐오 세력에 맞서 싸울 힘이 필요했고, 길게는 지난 열다섯 번의 축제가 필요했다. 하지만 단언컨대 이 한 시간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.